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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혼란 속 부서지는 기억 – 《더 파더》 줄거리 요약, 영화의 매력, 총평

by write-1717 2025. 6. 8.

 

 

줄거리 요약  

《더 파더(The Father, 2020)》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한 노인의 시선을 통해, 점점 무너져가는 기억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극도로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앤서니(앤서니 홉킨스)는 런던의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노인으로, 겉보기에는 정정해 보이지만 점점 기억이 뒤엉켜가고 있습니다.

그의 딸 앤(올리비아 콜먼)은 아버지를 돌보며 요양시설을 고려하게 되지만, 안소니는 도우미를 거부하고 모든 변화에 강한 불안을 보입니다. 이야기 초반부터 관객은 혼란스러움에 휩싸입니다. 방금 전까지 등장했던 인물이 전혀 다른 얼굴로 바뀌어 있고, 시간의 흐름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마치 퍼즐 조각이 뒤섞인 것처럼 장면은 연결되지 않고, 대사조차 낯설게 느껴지며 관객은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환상인지 혼동하게 됩니다.

이 모든 구성은 안소니의 인식 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감독은 일반적인 관찰자의 시점이 아니라, 치매 환자 본인의 내면을 주관적으로 따라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함께 체험하게 만듭니다. 현실은 조금씩 무너지고,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앤서니는 점차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앤이 프랑스 파리에 간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앤처럼 보였던 것인지. 남편이 죽은 건지 아닌 건지, 아파트는 자신의 집인지 아닌지… 안소니의 머릿속에서 시간과 공간, 관계의 개념이 점점 흐려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요양원 침대 위에서 흐느낍니다. "난 나뭇잎 같아… 엄마가 필요해요." 이 마지막 대사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과 퇴행을 마주하게 합니다.

 

 

영화의 매력

 

《더 파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병을 묘사하거나 환자의 주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상황을 전달하는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철저히 환자의 주관적 시점에서 전개되며, 관객은 마치 '안소니가 되어' 혼란의 미로를 걷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지 몰입의 수준을 넘어, 인지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수준입니다.

장면은 반복되지만,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고, 대사의 말맛도 묘하게 바뀝니다. 예를 들어 앤이 아버지를 찾아와 요양시설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장면에서는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내로 등장하고, 그 남자는 앤서니에게 이 집이 자기 것이라 말합니다. 관객은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다가 점차 '이것이 앤서니가 겪고 있는 세계'라는 걸 깨닫고, 그 무질서함 속에서 그의 두려움에 공감하게 됩니다.

감독 플로리앙 젤레르는 원작 연극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을 통해 놀라운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집 안의 인테리어가 미묘하게 바뀌고, 인물들의 복장과 표정이 달라지며, 시간의 순서가 매번 변주되는 방식은 관객에게 일종의 감각적인 퍼즐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단순한 시도 이상의 감정적 파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유쾌하고 똑똑한 노인으로 등장하지만, 점차 감정이 무너지고 말수가 줄어들며, 결국은 어린아이처럼 울먹입니다. 그 눈빛 하나, 목소리 떨림 하나에도 수십 년의 경륜이 깃들어 있습니다. 특히 요양원 장면에서 감정을 억누르려다 끝내 무너지는 장면은 단연 압권으로, 그가 왜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지 증명해 줍니다.

올리비아 콜먼 역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를 돌보는 일에 지쳐가는 딸의 현실적 감정을 무겁게 표현하며, 자식이 부모를 떠나보내야 할 때 겪는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조용히 그려냅니다. 그녀의 침묵, 눈물, 짧은 미소는 앤서니 못지않게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총평

 

《더 파더》는 단순히 '치매'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존엄, 존재, 기억, 그리고 관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기억으로 구성되며, 그 기억이 무너질 때 우리는 어떻게 남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영화는 한 인물의 무너짐을 통해 정직하게 접근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점점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 이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경고처럼 다가옵니다. 부모 세대가 겪는 기억 상실, 가족 내 갈등, 요양이라는 주제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한 인간이 '무너지는 과정'을 단지 측은함이 아닌, 깊은 이해와 존중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가슴 한편이 조용히 떨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혹은 미래의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당신의 기억은 어디에 머물고 있나요? 그 기억은 당신을 어떻게 지켜주고 있나요?"

《더 파더》는 감정적으로도 지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관객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잊힘의 순간'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 걸어오는 영화입니다.